Anatify (에너티파이) 「동사」
언어를 깨는 언어에 대하여 Work Index
2021 - Anatify Ex.1 Word Maker 2022 - Anatify Ex.2 Don't Believe Me, I'm Eul - Anatify Ex.3 Anavrin - Anatify Ex.4 Anamoturge - Anatify Ex.5 Here Stands a Thousand Years 2024 - Anatify Ex.6 Pesh (Memento Mori) - Anatify Ex.7 The Giver 작가 노트
2023년 5월 29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이 말이 처음 나왔던 ‘논리-철학 논고’가 출간된 지도 100년이 넘게 흘렀다. 그 사이 입자물리학에서는 양자역학이, 컴퓨터공학에서는 인공지능이 그리고 천체물리학에서는 암흑물질이 대두되어 오늘날의 과학기술 문명을 이끌어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3가지 발견은 모두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의 언어로 그 존재를 기술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미 ‘말할 수 없는 것’들과의 공존이 시작되어 버린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침묵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Anatify를 통해 언어화되지 않는 존재에 대한 감각을 깨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의 사전>, <나의 이름을 공유하는 수많은 사람들>, <노숙자의 행색을 한 기부 천사>와 <죽음을 배달해 주는 정기구독 서비스> - Anatify 연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표와 기의 사이의 매칭이 낯설기 짝이 없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내가 견지하는 주된 창작 방식은 대부분 이미 존재하는 사물들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변기를 보고 ‘샘’이라 이름 지은 뒤샹이나 부푼 풍선에 ‘예술가의 숨’이라 이름 지은 만초니가 그랬듯, 이러한 명명 행위는 미술계에서 이미 흔하게 볼 수 있는 창작 관행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이름 짓기에 ‘Anavrin’, ‘Pesh’, ‘Anamoturge’ 등의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을 적극 차용한다. 뒤샹이나 만초니가 대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새로운 언어 결속>을 만들었다면, 나는 대상과 언어와의 <결속을 깨뜨리는>데 집중한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언어적 프레임에서 벗어난 작품은 그것을 해석하는 관객들에게 난데없는 혼란을 야기한다. 그러나 그 혼란에 대응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가진 종래의 언어로써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받아들이고, 상징계 너머의 세상으로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키는 체험이 발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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