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xquilogy (적스퀼러지) 「명사」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하여
2023년 5월 9일 이을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만든다. 그는 아직 상응하는 언어가 없기에 인식될 수 없었던 존재들을 찾아 이름 지어준다. 그러한 명명 작업을 통해 이을은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세계의 범위를 확장시키려 노력한다. 이을이 만드는 시각예술은 이러한 이름 짓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인식되지 않는 ‘언어 밖 존재’를 찾아내는 일엔 언제나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이을은 종종 포착하려는 존재의 정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않는 난감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그가 정의 내리려 하는 것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되는 시각 대상물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언어 밖 존재’가 주는 내면의 인상을 반복적으로 외현화함으로써 이을은 그가 좇는 개념을 조탁해나간다. 대표적으로 2023년 1월에 만들어진 이을의 384번째 단어 적스퀼러지가 그렇다. 적스퀼러지는 6개의 적스퀼러지 입체 연작이 만들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 정의를 갖게 되었다. 이을의 적스퀼러지 연작에는 실험복을 입은 마네킨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은 각각의 작품에서 '내려갈 수 없는 나무다리', '유대감이나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된 4명의 인간 탁자', '희망을 품을수록 숨통을 죄여오는 목줄' 등에 의해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적스퀼러지에는 공통적으로 피해자만 있을 뿐 그들을 그렇게 만든 가해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핏 그들 스스로가 그런 고통을 자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분명 범인은 있다. 그것은 규범이나 관습 혹은 사회 구조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우리 삶 속을 파고든 외력(外力)이다. 이을은 이 은밀한 적의 존재를 적스퀼러지라는 이름으로 밝히며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방식으로 고통을 주는지 조명한다. 이처럼 이을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그것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보다 다채롭고 정교한 언어를 만들어낸다.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라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조응하며, 이을은 그의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로 세상의 한계를 갱신해 나간다. |
■ 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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