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tify (에너티파이) 「동사」
언어를 깨는 언어에 대하여 Eteron (에테론) 「명사」
분별을 지우는 언어에 대하여 Juxquilogy (적스퀼러지) 「명사」
은폐된 적을 드러내는 언어에 대하여 작가 노트 2021년 12월 9일 나는 단어를 만든다. 심화되는 경제 양극화 문제를 언어적 차원에서 해결해 보기 위해 만들어진 Eteron이나, 우리 사회를 잠식해 나가는 은폐된 전체주의를 폭로하는 Juxquilogy처럼 나의 단어들은 내가 살아가는 오늘의 시대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만들어진다. “언어의 한계가 곧 세상의 한계”라던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나는 이와 같은 단어 만들기를 통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세상과 변화하는 실제 세상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 한다. 언어는 사회적인 약속이기에 결코 나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 수 없다.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과정의 핵심은 그 단어의 의미와 사용법에 대한 집단적인 대화와 합의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단어를 예술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연작을 만든다. 작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관객들과의 소통이 거듭될수록 단어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성장하고 진화한다. 내가 만드는 모든 작품과 작가 노트는 모호하게 그 언저리를 맴돌 뿐, 사회적 산물로서의 단어가 최종적으로 어떠한 정의에 수렴하게 될지는 단어를 만든 나조차 예측할 수 없다. 자신이 만든 창작물에 대한 작가의 이와 같은 소극적인 발언과 자세는 단어 만들기에서의 내 역할이 더 이상 ‘작가’ 일 수 없음을 성찰한 결과이다. 실제로 단어에 뜻과 쓰임이 부여되는 무대가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세상 속이라면, 이때 진정 단어를 만드는 작가는 사회를 살아가는 익명의 대중이 된다. 나의 역할이 필연적으로 단어와 대중 사이를 ‘이어주는’ 충실한 매개자가 되어야 함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이름 ‘이을’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