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단어 사전의 저자 이을은 오직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예술가다. 이을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은 매번 다르다. 어떤 때에는 멕시코에 사는 시골 소년으로, 어떤 때에는 베니스로 여행 온 동양인 여자로, 또 어떤 때에는 책상 위에 놓인 무생물의 컵으로 등장한다. 언어와 존재를 주제로 하는 이을의 작업은 그녀의 대학 시절에서 기인한다. 어릴 적 이을은 프로그래밍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학과 논리의 언어로 세상을 바라보는 훈련을 거듭했다. 그러한 경험은 세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데 있어 우리의 일상적 언어가 가진 한계에 대해 인지하게 만들었다. 이후 이을은 소쉬르와 싯다르타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녀의 생각을 심화해 나갔다. 언어와 존재의 관계성에 대해 설명하던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찾아가면서 그는 다람살라의 사찰에서부터 Tenzin Tsoejor라는 법명을 받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경험 이후로 이을은 언어에 아직 포괄되지 못한 영역의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만들어 아직 조명 받지 못한 세상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작업의 주제만큼이나 이을은 주제를 구현해 내는 기술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때문에 그녀의 작업 곳곳에서 페인팅이나 조각과 같은 종래의 전통적 매체는 물론이고 비주얼 프로그래밍이나 피지컬 컴퓨팅과 같은 다양한 첨단 기술의 활용을 볼 수 있다. 가령 이을은 위성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삼성전자의 초대형 미디어 월 'Infinity Tower'에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 해당 작업은 2020년 Red Dot 어워드와 2021년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다. 또한 그는 일상의 사물인 주전자에 피지컬 컴퓨팅을 이용해 무한한 물의 순환을 일으키는 'The Lovers'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2023년 오스트리아의 Ars Electronica에 초청되어 전시된 바 있다. 이러한 그의 다매체적 시도는 이을 스스로가 특정 매체에 구속된 페인터나 조각가 혹은 프로그래머 등의 ‘기술자’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고 있음을 방증한다. 되려 그것은 그녀가 사유하는 메세지에 온전히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주제를 표현하기에 적절하다면 그것이 어떤 매체일지라도 상관없다는 작가로서의 의지 표명에 가깝다. 부단히 정진하여 얻게 된 자유로운 표현력을 바탕으로 이을은 다시 그의 주제로 돌아온다. 언어로써 인식된 협소한 세계와 광대한 실재계 사이의 간극, 그것을 좁혀 나가기 위해 이을은 고민하고 작업한다. |
|